
회식을 피하는 이유
회식 공지가 올라오면 직원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요?
"또 회식이네..."
"오늘은 그냥 집에 가고 싶은데..."
"빠질 수도 없고..."
한때 회식은 직장생활의 중요한 조직문화였습니다. 함께 식사하고 술잔을 기울이며 업무에서는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를 하고, 선후배 간 신뢰를 쌓는 소통의 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회식의 본래 목적은 점차 퇴색했습니다.
술을 강요하는 문화, 상사의 일방적인 이야기, 늦은 시간까지 이어지는 자리, 참석 여부가 암묵적인 조직 충성도의 척도로 인식되는 분위기….
결국 직원들에게 회식은 '소통의 시간'이 아니라 '업무의 연장'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습니다.
최근에는 아예 회식을 없애거나 회식비를 지급하는 기업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심지어 채용공고에 '회식 강요 없음'을 복지 항목으로 내세우는 기업도 있습니다.
회식이 없는 것이 복지로 인식되는 현실을 보며, 한편으로는 씁쓸한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문제는 회식이 아닙니다.
문제는 회식을 운영하는 방식입니다.
조직에는 사람을 연결하는 장치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HR에서는 조직의 경쟁력을 설명할 때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라는 개념을 자주 이야기합니다.
사회적 자본은 구성원 간 신뢰와 관계, 그리고 협력 수준을 의미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인재들이 모여 있어도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면 협업은 어려워지고 조직의 성과 역시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서로를 이해하고 신뢰하는 조직은 변화와 위기 속에서도 훨씬 강한 경쟁력을 발휘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신뢰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회의실에서는 업무를 논의할 수는 있지만 사람을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업무 이야기만으로는 서로의 가치관과 고민, 성향을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조직에는 구성원들이 자연스럽게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돕는 '의도적인 연결의 장치'가 필요합니다.
과거에는 회식이 그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회식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기능을 어떻게 더 건강하고 효과적으로 수행하도록 바꿀 것인가입니다.
회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필자의 경험)
30년 넘게 인사업무를 하면서 수많은 직원들과 회식을 함께했습니다.
그 시간은 단순히 식사를 하는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직장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고민하는 신입사원의 이야기를 듣기도 했고, 상사와의 갈등으로 힘들어하는 후배와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이직을 고민하는 직원에게는 눈앞의 처우보다 자신의 커리어를 조금 더 긴 시각에서 바라보도록 조언하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회사에서는 쉽게 말하지 못했던 개인적인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고, 인생 선배의 경험담 한마디가 큰 위로와 용기가 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런 대화는 회의실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정식 면담에서도 쉽게 나오지 않습니다.
조금은 편안한 분위기에서 함께 식사하고 웃으며 대화할 때 비로소 사람은 마음을 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저는 회식을 단순한 식사 자리가 아니라 사람을 이해하고, 사람을 성장시키며, 신뢰를 축적하는 또 하나의 HR 활동이라고 생각합니다.
MZ세대는 회식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부담스러워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MZ세대는 회식을 싫어한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이들은 불필요한 형식과 강요를 부담스러워합니다.
술을 강권하는 문화도 싫어하고, 개인시간을 침해받는 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 자체를 부담스럽게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회식을 없애면 해결될까요?
오히려 또 다른 문제가 생깁니다.
직장생활에 익숙하지 않은 신입사원과 젊은 구성원들은 선배들의 경험을 들을 기회가 줄어들고, 자연스럽게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접점도 사라집니다.
메신저와 화상회의는 늘었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를 대신 만들어 주지는 못합니다.
AI가 업무를 대신하는 시대가 되어도 사람을 이해하고 신뢰를 쌓는 과정만큼은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결국 조직에는 여전히 사람을 연결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제는 '회식'이 아니라 '경험'을 설계해야 합니다
앞으로 기업이 고민해야 할 것은 회식을 할 것인가가 아닙니다.
직원들이 참여하고 싶어 하는 '경험'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입니다.
앞으로의 회식은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변화해야 합니다.
• 술 중심이 아니라 대화 중심의 프로그램
• 강제 참석이 아니라 자율적으로 선택하는 문화
• 늦은 밤까지 이어지는 자리가 아니라 짧고 밀도 있는 만남
• 상사가 주도하는 회식이 아니라 모두가 참여하는 수평적 소통
• 술자리뿐 아니라 점심 식사, 스포츠, 문화체험, 봉사활동, 쿠킹 클래스 등 다양한 형태의 팀 활동
회식의 형식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구성원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신뢰를 쌓는 시간만큼은 결코 사라져서는 안 됩니다.
기다려지는 회식이 최고의 조직문화를 만듭니다
좋은 조직문화는 제도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고, 서로를 이해하고, 신뢰가 쌓일 때 비로소 만들어집니다.
회식을 하고 안 하고가 복지의 척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잘 설계된 회식은 조직문화에 대한 투자이며, 사회적 자본을 축적하고 구성원의 몰입(Employee Engagement)을 높이는 중요한 HR 프로그램입니다.
이제 기업이 던져야 할 질문은 하나입니다.
'회식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직원들이 기다려지는 회식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입니다.
술을 강요하는 분위기며, 상사를 위한 의전 중심의 회식 문화는 바뀌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을 연결하고, 서로를 이해하며, 경험과 지혜를 나누고, 신뢰를 쌓는 시간까지 없애서는 안 됩니다.
회식의 성패는 술의 양이 아니라 신뢰의 깊이로 결정됩니다.
직원들이 "이번 회식은 꼭 참석하고 싶다."라고 말하는 조직.
그런 회사야말로 구성원이 오래 머물고 함께 성장하는 건강한 조직문화를 가진 기업이 아닐까요?